[VOM현장] 사법질서, 젠더 폭력에 맞서 정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

MWTV | 2017.04.29 03:06 | 조회 160

이주현장소식 | 이주 관련 다양한 활동과 행사 소식을 전합니다.


사법질서, 젠더 폭력에 맞서 
정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

국회의원회관에서 베트남 이주여성 하씨 혼인취소소송에 대한 토론회 열려…
국제 젠더 폭력과 혼인질서에 대한 법적 쟁점들 논의돼 




하씨는 어떤 일을 겪어 왔는가

    지난 3월 27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춘숙,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회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한 “관습에 의한 젠더 폭력과 혼인취소를 둘러싼 불평등”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피해자 대리인단 소속의 김용혁 변호사, 형사정책연구원의 장다혜 연구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레티마이투 인권팀장 등이 참가한 이 날 토론회에서는 지난 2013년 시작된 베트남 이주여성 하씨를 둘러싼 소송의 경과와 관련한 법적‧젠더적 쟁점, 그리고 베트남에서 자행되고 있는 약탈혼의 불법성과 비인간성 등이 폭넓게 논의되었다. 
  
    토론에 앞서 김용혁 변호사가 사건의 경과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베트남 소수 민족 출신인 하씨는 옆 마을의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낯선 남자들에게 붙잡혀 내리 3일 동안 끔찍한 성폭력을 경험한다. 이후 하씨를 납치한 남자들은 하씨를 데리고 하씨의 집에 가서 예물을 준 후 결혼 승낙을 받아 혼인식을 올린다. 충격이게도, 이 모든 일은 하씨가 만 13세일 때 벌어진 일이었다. 
    이 지역의 민족들에게는 빳 버, 혹은 끄업 버라고 불리는 약탈혼의 관습이 남아 있다. 베트남 정부는 이를 명확한 불법으로 명시하고 약탈혼에 관한 규정을 따로 만들어 약탈혼을 자행한 사람을 처벌하고 있지만, 고립된 산악지대에서는 최근까지도 이 풍습이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씨 또한 이 관습의 희생자가 되고 만 것이다. 
    시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강제 결혼 이후 하씨는 곧 출산을 하게 된다. 그 후에도 하씨는 남자의 집에 붙잡혀 온갖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시장에서 나무를 팔아 돈을 마련하는 것 모두 하씨의 몫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씨와 결혼한 남자는 하씨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강제적인 성관계를 요구했다. 1년 정도 이런 생활을 지속한 이후 하씨는 간신히 남성에게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20대가 될 때까지 근처 도시에 나와 살던 하씨는 국제결혼 프로그램을 통해 30대 중반의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물론 결혼 상대는 생면부지의 남성이었고, 나이 차이도 있는 데다가, 처음에서는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씨는 결혼 초기의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일 무렵, 하씨의 인생에 다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하씨의 시아버지가 하씨를 성폭행한 것이다. 시아버지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하씨의 남편과 시가족들은 엉뚱하게도 하씨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하씨의 지난 출산 사실이 알려지고, 남편은 하씨가 자신을 속이고 결혼했다며 결혼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3년 8월의 일이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남편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무리 불법적인 관계라고 해도 하씨가 다른 남성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 사실을 결혼 전에 미리 고지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거짓말에 해당한다는 남편 측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맞서 피해자 변호인단은 하씨가 당했던 피해를 이야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하씨의 인권과 명예를 심각하게 손상한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사건을 파기환송시켜 2심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환송심에서 다시 한 번 뒤집힌다. 남편측이 베트남에 사람을 보내 하씨를 성폭행했던 남자의 가족과 인터뷰한 영상을 찍어 왔기 때문이다. 남편측은 이 영상을 토대로 하씨가 성폭행 이후 결혼생활을 하는 도중 임신과 출산을 겪었고, 그 이후에도 결혼 생활이 얼마간 계속되기 때문에 하씨가 어느 정도 결혼을 지속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환송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현재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온 상황이다.
  

법원의 판단 근거는 성차별적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장다혜 부연구위원은 이 사건을 우리 가족법 질서에 대한 해석이 가지고 있는 성차별적 요소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먼저 파기환송심은 임신이 결혼 후에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씨의 출산이 성폭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부정했다. 여성이 성폭력 후 바로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성관계를 용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이 판단은 하씨가 도망칠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장 연구원은 주장했다. 
    또한 법원은 출산 여부가 혼인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고, 출산한 자녀가 생존해 있다면 언젠가는 양육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에 혼인시에 출산 경험을 반드시 이야기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의무는 임신, 출산을 이유로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어긋나고,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만 제기되는 성차별적인 의무이다.
    마지막으로 법원은 납치혼 관계에서 출산한 자녀에 대해서도 부양 내지 양육의 의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납치혼이 국제법, 국내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성폭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법원은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친모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여성에게 부양 및 양육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부당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로 읽힐 가능성도 있다.

  
아동 성폭력의 특징, 국제적인 의미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이후 2부에서는 이 사건을 좀 더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지 관점들이 제시되었다. 청소년 단체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는 이 사건이 단순한 성폭력이 아니라 아동에 대한 성폭력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건에 대해 고려할 때 아동 성폭력의 특징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 성폭력의 피해자들은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에서 무력감에 빠지고, 심지어는가해자에게 의지하게 되기도 한다. 나중에 사건을 판단할 때 이러한 심리 상태가 성관계에 대한 동의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아동 성폭력 사건을 판단할 때에는 이러한, 소위 ‘그루밍’ 이라는 특징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동기에 이루어진 성폭력은 정신, 신체적으로 큰 후유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족, 사회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이 대표는 하씨의 경우에 지지와 격려는 커녕 오히려 믿고 있던 남편의 가족으로부터 추가적인 가해를 당한 상황이기 때문에 굉장히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며, 피해자에 대한 조속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개발협력부의 김양희 부연구위원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팔, 라오스 등지에서 자행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젠더 기반 폭력을 고발했다. 특히 라오스의 흐몽족 같은 경우에는 남성이 여성을 집 안으로 세 발자국만 끌고 들어오면 혼인이 성립되고, 다시 집 밖으로 세 발자국만 쫓아내면 혼인이 파기되는 등 혼인에 있어 여성의 어떠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 문화적 관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김 연구위원은 이 사건을 보며 “내가 해외를 다니며 보았던 그녀가 바로 여기에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연구위원은 개도국 역량 강화를 위해 이러한 젠더 폭력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법적, 제도적, 정책적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젠더 폭력에 의한 강제적 동거를 사실혼 관계로 인정한 법원의 판결이 이러한 노력에 역행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모든 성폭력 피해는 가해자의 책임이다

    정작 베트남 현지에서는 이런 풍습을 완전히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민간, 정부 차원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주여성센터 인권팀장 레티마이투 씨는 조혼 풍습을 막기 위한 베트남 현지의 대응과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으로서 이 사건을 보며 느낀 점들을 제시했다. 
    레티마이투 씨는 이번 사건이 “한국법이 악습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외면하는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며, 성폭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피해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이 문명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대법원이 이번에 하씨의 손을 잡아주기를 바란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이후 플로어 토론이 이어졌다. 자신을 검찰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만일 하씨가 내국인이었다면 이번 소송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지적하며 국내 결혼과 국제 결혼이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아동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학생의 합창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박상준씨는 우리 형법은 성폭력인가 아닌가를 규정할 때 피해자가 항거 불능 상태였는가와 저항의 유무를 동시에 중요시하는데, 이 두 관점이 서로 충돌하며 딜레마를 만들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대리인단은 이 날 열린 토론회의 결과를 토대로 대법원 상고에 보충 이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토론자들의 발언처럼 이번 판결은 아동성폭력의 심각성, 결혼이주여성의 인권,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출산‧양육의 의무 등 수많은 쟁점들에 대한 우리 사법부의 판단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판단을 앞둔 대법원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글 | 한건희 MWTV 기자단 5기  


이주, 노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다. 이것저것 읽는 것, 그리고 이것저것 먹는 것을 좋아한다. bbscg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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