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현장] 일본과 한국의 재정착 난민 제도와 초국적 카렌 공동체

MWTV | 2017.07.02 08:31 | 조회 117

이주현장소식 | 이주 관련 다양한 활동과 행사 소식을 전합니다.


카렌족 재정착 난민 이야기


일본과 한국의 재정착 난민 제도와

초국적 카렌 공동체

 
 



 

2010년 9월 28일, 나리타 공항.


“일본 정부가 아시아 최초로 난민제도를 시행하면서 카렌족 26명을 일본으로 데려 온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 여성을 눈여겨 보세요. 웃고 있지요. 당당합니다.

여자분 이름은 노블레, 남편은 조세인. 2010년도에 이들이 왔고 2016년에 (제가) 이들 집에 방문했습니다. 6년 사이에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일본과 호주, 한국의 카렌족 재정착 난민을 연구해온 이상국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6월 24일 연세대 위당관에서 열린 <재정착 난민 제도와 실제> 포럼에서 일본 재정착난민제도 시행 초기에 일어난 시행착오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2010년에 5가족 27명, 2011년에 4가족 18명이 입국했는데, 2012년 9월 말 입국 예정이었던 3가족 16명 전원이 출국 직전 취소의사를 표명했습니다. 2010, 2011년에 일본에 온 사람들이 페이스북으로 일본 오지마라, 일본 살기 힘들다고 한 거죠.”




일본정부로서는 3년 프로젝트로 시작했고, 난민을 더 수용할 계획이었는데 난민들이 거부하니까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고민하다 2년 늘려서 2014년까지 프로젝트를 연장하기로 했다. 처음엔 태국과 미얀마 국경 지대인 멜라(Maela) 난민캠프에서 들여왔는데 움피엠(Umpiem) 캠프까지 확대하면서 후보자를 늘렸다. 2013년엔 18명, 2014년 23명 총 합해서 86명 18가족이 들어왔다.


“첫해 들어온 그룹은 처음 6개월동안 센터에서 교육 훈련을 받고, 6개월 후 주거지를 옮겨가야 했어요. 처음엔 3가정이 미에현으로 가고, 2가정이 지바현으로 갔어요. 현재 어디에 사느냐? 각각 흩어졌어요.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들은 6개월 동안 매일 센터에서 일본어교육을 받았다. 6개월동안 생활비를 매일 1500엔, 한국돈으로 1만5천원 가량을 받았다. 6개월간 초기교육을 받은 후 주거지를 옮겨 6개월간 직업훈련을 받게 된다. 일본정부는 이들에게 생활비를 매일 3-4만원으로 올려줬다. 난민을 고용한 사업주들에게도 인센티브를 1명당 매달 25만원씩 줬다. 월급도 1/3에 해당하는 50만원을 1년간 지원해줬다.


첫 6개월간 이들은 행복한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일본 정부가 아시아 최초로 재정착난민제도를 도입하면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강했다. 난민들을 제 손으로 돌봐야한다는 욕심이 컸던 것이다. NGO 개입을 막고 기존 카렌공동체의 개입을 철저히 막았다. RHQ(Refugee Assistance Headquaters)라는 기구가 모든 지방정부를 배제한 채 난민들의 언어적응, 문화적응을 돕고 직장도 알아봐주고 주거지도 알아봐줬다.


RHQ는 난민이 고향에서 농사일을 했으니 일본 농촌에 이들을 배치시키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수백군데 농촌에 연락해서 지바현 비닐하우스 농장에 배치했다.


“비닐하우스 일해보셨나요? 한시간도 버티기 힘듭니다.”



이 교수는 이렇게 청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카렌족들은 원래 오전에 시원할 때 일하고 더울 때는 쉰다. 일하는 시간이 얼마 안 된다. 그런데 남편 조세인은 일본 비닐하우스에서 하루종일 일해야했다.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것도 문제였다. 통학거리가 왕복 두시간. 부인 노블레는 아이 등하교에 오전, 오후 두 시간씩, 총 네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노블레는 지바현에서 태어난 아이까지 자녀가 총 6명이었다. 이들은 도무지 해결책을 못 찾다가 비닐하우스 일을 거부하고 카렌공동체 지도자에게 SOS를 쳤다.


이 사건은 곧 국가적 이슈가 되었다. NGO, 법무부, 외교부 다 달라붙고 뭐가 문제인지를 물었다. 그때서야 RHQ가 잘못을 깨닫고, 기존 카렌공동체와 NGO를 참여시켰다. 그래서 2014년 이후에는 이러한 문제가 없게 되었다. 노블레 가족은 도쿄 근처로 이사했고 조세인은 재활용업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2015년 12월 23일, 인천공항.


태국 난민캠프에 머물던 카렌족 출신 재정착 난민 4가족 22명이 한국에 왔다. 이들은 대한민국 '재정착 난민 1호'이다. 2016년 11월 2일, 카렌족 출신 재정착 난민 7가족 34명이 입국했다.

2017년 6월 9일, 영종도의 출입국 외국인지원센터에서 제2기 재정착 난민들이 퇴소식을 했다.



* 재정착 난민제도(Refugee Resettlement Support Program)란?

재정착 난민제도의 개념은 ‘A 국가에서 B 국가에 비호를 신청, C 국가에 영구적인 주거권을 받고 재정착하는 것’이다. 아직 아시아 국가는 재정착 난민을 수용하는 ‘C국’보다는 비호 신청국 ‘B’인 경우가 많다.(공익법센터 어필 2014년 3월 30일)

해외 난민캠프에서 한국행을 희망하는 난민을 유엔난민기구(UNHCR) 추천을 받아 심사 후 수용하는 제도. 1950년대부터 UNHCR이 추진해왔으며 미국, 호주 등 28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일본도 2010년부터 이 제도를 운용 중이다. 국내에서는 관련 규정을 담은  '난민법'이 2013년 7월 시행됐다.(연합뉴스 2015년 12월 22일) 정부는 지금까지 스스로 국내에 들어온 난민에게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그쳤다. 하지만 2015년부터 시범 시행하게 된 재정착 희망난민제도는 훨씬 적극적인 난민 수용제도다. (중앙일보 2015년 12월 23일)

한국 카렌 재정착난민에 큰 기여를 한 한국카렌연합

그 배후엔 초국적 카렌네트워크 IKO 있어 


KKO(Korea Karen organization 한국카렌연합)은 1기 재정착 난민이 들어오자마자 2015 12.27에 설립되었다. KKO의 설립에는 호주에 있는 초국적 네트워크 IKO(International Karen Organisation)의 영향이 컸다. 호주에서 온 IKO의 대표가 KKO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일본과 달리 카렌족 재정착난민들을 받아들일 때 한국의 카렌공동체 청년들의 도움이 컸다. 

 



지나친 물직적 지원과 홍보보다는 자립을 위한 정책과 활동을 


영종도 출입국 외국인지원센터(일명 영종 난민센터)에서 재정착난민들과 생활하면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엘자포 한국카렌연합 회장는 영종 난민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초기정착지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곳에 6개월간 머물게 되는 재정착난민들은 한국어교육과 한국사회이해교육, 음악, 심리치료, 정보화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이후 초기정착을 위한 취업 지원, 물품과 비용 지원 등을 받는다. 장보기, 병원진료 등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생활멘토, 한국어멘토도 지원받는다.




엘자포 회장은 그간의 지원에 대해 느낀 점을 말했다. 우선 물질적 지원과 관련해 “수혜자의 경제적 자립심을 저해하게 되므로 물질적 지원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한다.”며 “재정착 난민 자녀들에게 필요한 건 한국에서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교육환경과 정책”이라고 했다.


그리고 재정착 난민이 홍보용으로 너무 많이 이용되고 있음에 우려를 표했다. “재정착난민정책이 비교적 최근에 시작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정책이다 보니 어느 정도 홍보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재정착 난민들이 외부에 많이 노출되면서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 특히 아이들이 이로 인해 학교생활에 지장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했다. 회장은 “재정착 난민에 대한 정부와 봉사단체의 노고를 인정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재정착난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책과 활동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MAP, 김포시 난민지원조례가 무산되는 걸 보며

난민 개인을 위한 서비스보다는

지역 사회에 난민공동체를 알리는 활동 시작해


MAP(Migration to Asian Peace 아시아 평화를 위한 이주) 김영아 대표는 난민공동체와 함께 해온 활동을 소개했다. MAP은  KKO와 함께 에나 청소년 극단을 창단해서 매주 일요일 3시간 뮤지컬 수업을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MAP의 활동은 난민 개인보다 한 지역에 집단거주하고 있는 공동체와 관계 맺으며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난민공동체와 신뢰가 쌓이면 이들이 지역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고, 어떻게 관계를 발전시킬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파트너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간다. MAP이 이러한 사회통합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


MAP은 일전에 김포시에서 15년간 활동하고 있는 줌머족(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자조단체와 함께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그러던 중인 2015년 김포시에서는 ‘난민지원조례’가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발의 되었다가 결국 무산된 바가 있다. 조례는 김포시에 들어온 난민, 난민신청자, 인도적 체류자, 재정착난민 등 다양한 형태의 난민을 모두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5년간 한 지역에서 오래된 이웃으로 살아오고 문화적, 경제적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해 온 줌머족인데, 정치적, 경제적 부담감 때문에 정작 난민조례가 통과 되지 않는 걸 보면서 김영아 대표는 고민이 많아졌다.


지자체나 지역사회가 난민을 수용할 준비, 즉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조례를 만들고 시민권과 정치적 발언권을 줄 정도가 되려면 난민지원단체들이 난민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에서 사회통합을 위한 활동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MAP은 난민공동체와 일하지만 지역사회 즉 학교, 동사무소, 병원, 다문화센터, 다양한 기관들에 난민이 누구인지, 어떤 사연으로 왔는지 소개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국에 온 난민공동체와는 그들의 고향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줌머족과 방글라데시에 직접 가서 왜 이들이 한국에 와야했는가, 15년간 왜 계속 방글라데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계속 호소하는가에 대해 살펴보기도 했다.


한국정부가 재정착난민프로그램 시작한다고 했을 때, 미얀마에서 다양한 민족이 한국에 와있지만 카렌이 가장 작은 규모였다. 정작 한국에 이미 와 있는 카렌족들은 난민 인정을 거의 못 받고 있었다. 난민신청자가 재정착난민 돕는 아니러니한 상황이 되었는데, 이런 분들 중에 아직도 난민 인정 못 받은 분들이 있다고 한다. 한편 미얀마와 태국 국경에 있는 카렌족들은 현지로 귀환하라는 압박 속에 산다. 그래서 MAP은 현지에서 KKO와 함께 재정착마을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초국가적 카렌 네트워크는 종족의 정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 KKO가 만들어질 때 역시 호주에 있는 초국적 네트워크 IKO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김 대표는 에나 청소년 극단의 활동을 정부에 기대지 않고 다달이 회비를 걷어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 뮤지컬 만들었다는 얘기에 벌써 연락이 온다. 정부에서는 "카렌 사람들 잘 해줘서 고맙다, 그런데 너네는 누구냐, 왜 이걸 하냐" 하고 언론에서는 "아이들을 보여주세요 스토리를 보여주세요." 한다. 또다른 대상화, 복지 프로그램의 타겟이 될까봐 KKO 회원들과 의논하면서 조심하고 있다.   


초국적 활동은 정체성의 투쟁의 장


줌머족을 지원해온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최영일 대표는 소수민족들의 초국적 활동에 대한 지원과 시민들의 의식에 대해 한마디 덧붙였다. “초국적 활동은 정체성의 투쟁의 장이다. 그부분은 최대한 지원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활동이 축제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난민이 시민권, 국적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절차는 시간이 흐르면 얻을 수 있지만 김포에서 귀화한 줌머족들이 진정한 의미의 시민권을 인정받았느냐, 지역 시민들, 동네사람들, 사업주들이 이들의 시민권을 인정해줬느냐는 차원에서는 아주 빈약하다. 진정한 의미의 시민권 획득은 지역사회의 비제도적 통합과 NGO와 시민들과의 끝임없는 상호작용과 인식개선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그부분에서 너무 정부에 기댈 게 아니라 일단 우리가 할 게 뭔가, 이들의 리더십을 키우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대상화, 타자화에 대해서 어떻게 정상적으로 방어하고 예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시민단체들이 와서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포럼에 참석한 한 난민과 관계자는, 법무부에 난민과가 생긴지 3년 밖에 안 되었다며, 한국은 일본과 같은 실패사례 겪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통합은 1, 2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세대가 지나서야 성공을 판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며 고충을 전했다.


카렌족은 미얀마인이나 버마인이 아닌 카렌인


소에포 한국카렌연합 사무처장은 마지막으로 국가정체성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당부했다. “카렌족은 미얀마에서 왔지만 미얀마인이 아니고, 버마인도 아닙니다.” 소에포 사무처장은 미얀마, 버마인이 아닌 카렌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난민들은 문화적, 종교적, 종족적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져야지, 국가정체성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이다.


난민재정착제도가 이주민들의 처우를 상위 평준화하는 계기 되길


이상국 교수는 마지막으로 재정착난민만 처우가 다름을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난민신청자, 인도적 체류자,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이주민들의 처우가 각각 다 다르다. 이 교수는 “난민재정착제도가 각각 다른 층위의 사람을 차별이 아닌 상위 평준화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 “허위 난민 신청자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왜 이주민들이 난민 신청을 하느냐. 처우가 다르니까 발생하는 것이다. 이주민 지원 제도가 상위 평준화되어서 이주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제도적 발전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 숲씨 웹진 VOM 편집장


숲도 작은 씨앗에서 태어났습니다. 악의 평범성, 내재화된 폭력성을 살피고 끊어내는 일, 일상에서의 실천, 평화에 물들고 평화에 물들이는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mwtvba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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