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_문성준 후원회원님과의 만남

MWTV | 2017.04.29 06:36 | 조회 198

후원회원과의 만남 <10> 이주민방송에서는 매월 한 번씩 이주민방송을 후원해 주시고 계신 회원님과의 특별한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문성준 후원회원님과의 만남

 



이번 후원회원과의 만남에서는 지난 5기 이주민라디오제작교육 수료생이자, 이주민방송 창립 이전부터 이주노동자운동에 함께 해온 문성준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를 하고 있는 문성준입니다.

 

이주민방송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2003년인가요그 때 명동성당과 성공회성당 양쪽으로 나눠서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이 진행됐었는데요. 1년여 명동성당에서 농성이 이어지는 동안 이주노조가 만들어졌어요당시에 모인 에너지를 바탕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중에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일 즉, ‘방송을 만들자라는 욕구가 표출되었지요미디어 활동가로 명동성당 농성에 결합한 저는 이병한PD(이주민방송 전 대표), 마붑(영화인 겸 이주민방송 전 대표등 몇 분과 함께 방송제작을 시작했어요그런데 당시에 저는 독립다큐멘터리를 지향하고 있었던 까닭에 정기적으로 하는 방송은 별로 자신이 없었어요도울 수 있는 건 돕고 지켜봐야 할 건 지켜보자 라는 입장이었죠그 후로 이주민방송이 영화제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활동하고 그런 일들을 지켜보며 함께 기뻐했었죠.

 

감독님은 원래 독립영화 작업을 해오시다가, 어떤 계기로 명동성당 농성에 결합을 하시게 되셨나요?


제가 대학교 때부터 필름 워크숍이나 단편영화 워크숍’ 등의 참여를 통해 영상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2000년도에 한겨레 영화학교 1년 과정을 다녔었어요영화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다른 친구의 영화 메이킹필름 제작도 했었는데제 지향점은 다큐멘터리였거든요그래서 다큐인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다큐인에서 작품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는 그 방향이 모호했었어요그런 고민의 와중에 이주민 문제를 알게 되어 명동성당 농성에 들어가게 된 거죠. 2002년 5월에 처음으로 평등노조 이주지부라는 단체와 연결되어서 일단 찍었어요그 결과물이 2003년 인권 영화제에 출품된 스탑 크랙다운이예요그 일을 계기로 이주노동의 상황을 더 잘 알리고 또 작품화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게 되었고이주 쪽을 더 파고들었던 거죠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했고 무리했던 거 같아요정리를 하면서 갔어야 했는데 욕심이 앞서서 정리가 안 된 상태로 간 거죠. 2002년부터 평등노조 이주지부와 함께 했던 활동이 어느덧 3년을 넘겼고, ‘이주노조’ 출범 이후까지 5번 정도의 농성을 같이 했어요. 2002년 이주지부 때 코밀비르버지르조다르단 문제로 77일간의 농성, 2003년 명동성당 농성간부들의 연행 문제로 국가인권위원회 농성종로 5가 민주노총 농성마지막으로 미셀 위원장 향린교회 농성 등을 참여하거나 또는 지켜봤죠.

 

정리하면서 갔었어야 했는데라고 하셨는데그건 어떤 의미인가요


아마 연표가 있을 거예요초창기부터 제가 시기별로 정리해 놓은 게 있거든요그러니까 저는 작품을 염두에 두고 활동했던 건데지금 생각해보면 욕심만 앞섰고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죠.

DB 구축도 그런데 그런 물리적인 것보다 아이디어적인 것기획적인 것들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혼자 하다 보니까 그러지를 못했어요이주문제도 분야별로 나누어서 접근했으면 정리가 되면서 손쉽게 할 수 있었을 텐데모든 걸 뭉뚱그려서 혼자 하려다 보니까 과부하가 걸렸던 거죠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십 년여를 보냈죠.

 

이주민방송의 박수현 전 대표 등 다큐 작업하시는 분들과 나누어 하기는 어려웠나요?

 

이주민방송은 그 특성상 시기별 현안에 집중해야 하니까제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와는 상이 달랐어요서로 관계는 있지만서로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그런 게 아쉽고다큐멘터리가 참 어렵고 지난한 작업이라는 것을 느꼈고

이주민방송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때 어떤 문제에 우리가 접근해서 만들어보자 했는데결국은 그게 잘 안 됐었죠그러니까 방송국 같은 경우는 작가면 작가연출이면 연출카메라는 카메라 이런 식으로 역할 분담이 있어서 어느 한쪽이 부족해도 보완을 통해 결과물을 낼 수 있잖아요그런데 그 때 제가 했던 것들은 아마 저한테 거는 기대가 컸던 까닭인지 제가 혼자서 다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실제로 같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결국 제가 다해야 하는이거 요구해도 안 되고저거 요구해도 안 되고결국은 아무 것도 안 되었던 거죠.

 

그랬군요. 감독님 그래도 이주민영화제에서 최근까지도 작품을 내셨죠.

 

. 2작품에서 3작품 정도

그중 이주민방송과 공동 제작한 것도 있어요작년에 상영했던 십년의 기다림’ 그게 공동제작 했고그리고 퇴직금 문제도 공동제작 했고딱 두 번이네요공동으로 제작한 게그런데 실제로는 거의 혼자 하고 연출비를 받은 거죠그런 부분도 좀 아쉬워요.

 

작품을 만들 때 에피소드랄까 기억나는 게 있었나요?

 

많아가지고...

 

오랫동안 쫓아다니면서 데이터를 엄청 축적하시면서 작업 하신 거잖아요데이터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때는 테이프 시대여서 6mm로 찍었어요그래서 6mm 테이프 장 두 개를 마문(현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 영화감독)이 짜줬어요거기에 테이프를 넣었더니 꽉 차더라구요.

 

그 자료들을 어떻게 정리하실 건가요?

 

그러니까요제가 욕심이 컸다니까요처음에는 그저 열심히만 했어요시기별로 구분해서 1, 2, 3, 4... 붙여 가면서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자료가 쌓이다보니 번호를 빠뜨리기도 했고지금은 막 혼재되어 있어요그것도 정리하려면 일이 너무 큰 거죠.

 

녹취가 되어 있어야 찾기도 쉬울텐데요...

 

그래서 스탑 크랙다운 작업할 때는 다큐인 쪽의 조연출 한 분과 테잎100개 정도를 녹취 했어요그런데 그 후로도 데이터는 계속 쌓여 이제 100개는 문제도 아닌 거죠. 2002년 상황은 어쨌든 단편으로 스탑 크랙다운으로 정리됐는데그 후로 욕심 낸 것들은 정리가 안 된 거죠그래서 아쉬움이 많아요.

 

작업하시며 또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요예컨대 어떤 이슈는 다른 이슈에 비해 다루기가 어려웠다든지 하는?

 

언어 문제정서 문제 같은 점이 크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그러니까 네팔 커뮤니티방글라데시 커뮤니티를 들어가면 다른 나라 말로 하잖아요그러면 막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그래서 실제로 제작하는 데 있어서는 언어의 어려움이 가장 컸어요그분들도 한국말로 해야 했으니까 힘들었을 거고.

 

촬영하고 나서 번역 작업을 다 하시나요?

 

하죠정말 지난한 작업이죠.

 

그렇게 다년간 이주문제에 대해서 천착해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힘이라면요

 

처음에는 책임감부채 의식이 있었는데지금은 그저 페이스북을 통해서나 소식을 접하고 있어요. ‘써멀이나 안와르나 비두...

 

다들 귀환하셨나요?

 

그 당시 분들은 다 모국으로 돌아갔죠그것도 컸던 거 같아요그러니까 다른 다큐멘터리는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쌓아 놓은 자료들은 바탕으로 다시 접근 할 수 있는데이주문제는 그 당시가 아니면, 모국으로 가버리니까또 다른 작품이 되어야 하잖아요그러니까 기획을 하면서 그게 힘들었어요한국 사람은 아무리 해도 구속되고 나서 감옥 갔다 오면 다시 볼 수 있는데이주분들은 한 번 잡혀가면 다시 볼 수가 없으니까


요즘은 이주관련 다큐작업은 하지 않으시나요? 

 

2000년 초기에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문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이슈화되는 문제였어요그런데 이주여성문제중도입국 청소년문제그리고 다문화 가정 아동문제 등의 이슈가 부각 된 것이 몇 년 됐죠저는 이주노동문제 이외의 문제들은 사실 잘 모르고 문외한에 가깝지요너무나 뻔히 보이는 문제인데 그게 십 몇 년이 고착화되니까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지친 거예요고용허가제 문제가 사업장 이동의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계속 문제를 제기해도 풀릴 가능성은 거의 안보이구옆에서 보기도 힘든 거죠그러다 보니 이제 다른 문제를 더 하고 싶기도 하고저도 다큐멘터리를 해야 하니까.

 

현재의 이주노동자 관련 문제들은 10여 년 전부터 제기되어오는 문제들일 텐데가장 시급한 문제를 꼽는다면요?

 

가장 큰 거는 고용허가제에 내재된 문제들이죠사업장이동 횟수 제한이라던가쉽게 옮길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그거 말고도 생활적인 대우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여전히 인권적인 문제가 발생하고다양한 거 같아요.

 

이주민 이슈와 관련해서 아직 못 다한, 하시고 싶었던 작업들이 있을까요사실 작품이 더 나올 수 있었는데다 완성을 못하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것들이 좀 있는데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간접 실현이 되는 것 같아요제 욕심만큼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마붑이 했던 리턴’(마붑제작의 다큐멘터리 작품)이나 이런 것들 보면한국에서 활동했던 그들이 모국에 돌아가서도 한국을 생각하고 연계를 지속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죠그런 활동들을 저도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마붑이 했고지금은 또 마문이 하고 있고저는 지금은 작업의 욕심은 없어요앞서도 말씀드렸는데 아쉬움이죠긴 투쟁의 기간을 하나의 영상을 보고서 형식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었는데안되었던 거죠나중에 가능하다면 아카이브 형식으로 정리를 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아마도 그건 작품의 형태는 아닐 것 같아요

 

네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문성준 감독님 앞으로의 작업도 늘 응원하고 기대하겠습니다!


인터뷰 | 숲씨 mwtvbae@gmail.com,  녹취 | 정혜실,  정리 | 정수창  


      후원회원신청 VOM구독신청 VOM게시 MWTV MWFM MWFF MWTVfacebook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0개(1/1페이지)
      회원과의 만남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 10편_문성준 후원회원님과의 만남 사진 첨부파일 MWTV 198 2017.04.29 06:36
      9 9편_이보람 후원회원님과의 만남 사진 첨부파일 MWTV 299 2017.03.13 17:18
      8 8편_야마다 다카코 후원회원님과의 만남 사진 첨부파일 MWTV 206 2017.02.12 21:19
      7 7편_강인수 후원회원님과의 만남 사진 첨부파일 MWTV 190 2017.01.11 06:28
      6 6편_타망 가네쉬 후원회원님과의 만남 사진 첨부파일 MWTV 751 2016.12.19 16:25
      5 5편_언론학자 정의철 후원회원님과의 만남 사진 첨부파일 MWTV 262 2016.11.16 12:37
      4 4편_전 이주민방송 활동가 최은서님과의 만남 사진 첨부파일 MWTV 366 2016.10.14 03:08
      3 3편_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 정소희 후원회원님과 함께 사진 첨부파일 MWTV 401 2016.09.03 03:01
      2 2편_이주민 의료 봉사하는 새길교회와의 만남 사진 첨부파일 MWTV 324 2016.08.14 19:50
      1 1편_경문고 따봉 선생님, 박범철 후원회원님과의 만남 사진 첨부파일 MWTV 440 2016.07.05 07:37